회사 소개

MM 125년의 역사, 독일 제조업의 역사

MM MaschinenMarkt의 125년은 기술과 산업의 125년 역사이기도 하다. 이 글은 19세기 창업 시대(1871년 이후 독일 경제 호황기)에서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디지털화 시대 그리고 현재의 멀티미디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인 전문 잡지인 MM의 발전사를 추적하고자 한다.

베네딕트 호프만 & 우도 슈넬(Benedikt Hofmann & Udo Schnell)

문화 사이클 이론에 의하면 역사는 앞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한다. 이러한 개념에 맞는다면 특정 양상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곳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예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과연 실제로 그런 것이 있을까?

스타트업 붐 이전에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창업자 정신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후반으로 되돌아가면, 독일의 창업 시대라고 불리는 때에 연착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정치와 문화 그리고 경제적 발전에 자극을 받아, 독일어 권의 모든 젊은이들이 회사 설립이나 기업자가 되기 위해 창업을 시작했던 때이다. Siemens와 베르너는 이 시대의 상징이 되었으며, Krupp 콘체른도 그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 튀링 푀스넥의 한 진취적인 젊은이였던 칼 구스타프 포겔도 당시의 „스타트업 창업자“에 속했다. 기업가의 길로 뛰어 들어 자신의 전문 출판사를 설립했을 때 그의 나이는 34살이었다. 이 출판사는 세월이 흘러 오늘날의 Vogel Communications Group으로 발전하게 된다. Vogel이 출간한 첫 번째 출판물은 „국제 우표 광고지“였고 당시에는 시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출판물은 우표 거래의 플랫폼 역할을 하였고, 구매자들이 제품과 상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당시의 제작자들을 돕는 간행물 트렌드였다.

1894년 MM을 창간하다

사실 C.G. Vogel이 첫 번째 간행물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았다면, 그는 진정한 설립자는 아닐 것이다. 그는 발전하는 산업화에 따라 호황을 맞이하는 기계 및 시스템 엔지니어링이 돈이 되는 새로운 사업 영역임을 직감하고, 1894년 ‘마쉬넨마르크트 – 모든 제련소 및 공장, 모든 기계 산업 및 인접 분야를 위한 광고지’를 시장에 출간하였다. 사실 그날이 MM 마쉬넨마르크트의 탄생일이다. 그는 우표 사업의 경험을 활용하여 다른 영역에서 그 모델을 ‘확장’할 수 있었다.

전후, 첫 번째 MM이 34 m²의 이 작은 판잣집에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도 구독자가 중요했다

칼 구스타프 포겔은 첫 번째 광고지의 컨셉트를 일대일로 적용하진 않았지만, 품 속에 또 다른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독자를 서로 다른 그룹으로 분류하여 돌아가면서 발송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온라인 거물들의 성공한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간행물을 같은 독자에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본 독자 그룹과 다른 독자 그룹에도 발송하였다. 각각의 독자 그룹은 잡지 내용에 따라 달리 선택하였다. 시장을 최대한 적절하게 커버하고 독자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구글과 페이스북도 컨텐츠를 노출할 때 이와 같은 개념을 적용한다(여기에서 이 기사의 첫 부분에 언급했던 문화 사이클 이론을 언급하면 너무 나간 비약일까?)

                  초기의 독자 그룹은 매우 초라하였다. 최초의 MM은 6,000부가 인쇄되었다. 이후에 칼 구스타프 포겔의 헌신과 기업가 정신을 보여준다. 독자들의 정보를 계속해서 수집하고 주소록에 적립하였다. 20세기로 넘어갈 무렵에 20,000부가 인쇄되었고, 이 20,000부를 200,000명의 그룹별로 타겟 발송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14년에는 전체 발송 주소록의 주소가 350,000개가 되었다. 각 호당 120,000부를 인쇄하였다.

                  당시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시작된 산업 발전으로 인해, 전문가들이 기존의 광고지와 학술지로부터 제공 받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였다. 회사에서 구매와 조달 업무를 맡은 사람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졌고,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전문 매거진으로 가는 길의역경

이러한 필요성을 설립자의 장남인 아더 구스타브 포겔이 빠르게 간파하였다. 그는 MM의 편집 내용을 쉽게 만들기 위해 구조적 변화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주변의 모든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였다. 1914년 7월 위기(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진 1914년 여름 유럽의 강대국들 사이에 발생한 외교적 위기 사태)를 시작으로, 같은 해 8월에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고 유럽은 유럽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재앙의 늪에 깊이 빠져 들었다. 전쟁터에서는 종교적 규율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였고, 광고지와 전문 매거진은 그 중심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더 구스타프 포겔은 다시 편집 작업을 위한 직원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런 인력을 찾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그의 앞에는 험난한 가시밭 길이 펼쳐졌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많은 것에 대해 생각을 했지만, 글쓰기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널리즘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수석 에디터는 현재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 가지 문제와 싸워야 했다. 바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노하우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개를 꺼린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문제에 어떻게 매달리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시 전문 매거진이라는 개념이 전무였던 시대에 이런 일로 기업을 상대하는 것이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 관련 테마를 저널리즘 방식으로

아더 구스타프 포겔은 선대의 방식에 머물지 않고 1921년에 편집 팀을 강력하게 재구성하였다. 이때부터 MM은 단순한 구매 광고지가 아닌 전문 잡지로 거듭나게 된다. MM은 고정 칼럼을 갖추고 산업의 중요한 테마를 다양한 저널리즘적 포맷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의 성공은 Vogel과 그의 동료들이 옳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세계 경제 위기가 모든 기업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기까지, MM은 정기적으로, 심지어 매일 인쇄기를 힘차게 돌렸다! 또한 1930년대에 개정된 출판 관련법은 Vogel에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그때부터 „잡지“는 광고 외에 본문 기사를 포함해야 했다. 이는 다른 경쟁 잡지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Vogel은 이미 모든 간행물에 이를 적용하고 있는 컨셉트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또 다른 세계적인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지를 꿈에도 몰랐었다. 나치즘(국가사회주의)의 권력 장악과 함께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환경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전쟁 발발과 함께 종이 한 장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따라서 MM의 성공 포맷인 타겟 그룹 교차 발송도 제한을 받게 되고 광고도 훨씬 축소해야 했다. 이후 나치 정권은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인쇄소에서 자재들을 빼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출판사는 발행 중지 명령을 받았다.

                  나치 정권은 주제가 비슷한 잡지들을 강제로 합병(일종의 언론통폐합)하고 이를 ‘전쟁 공동 연구회’라고 명명하였다. 이에 MM은 1944년부터 ‘광산, 제련, 금속 및 기계 산업을 위한 클레프치히 광고사’, IhI 출판사의 ‘기계 및 공구’ 잡지 그리고 Giradet에서 발행한 ‘에센 광고사’와 함께 출판하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전의 저널리즘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전문 잡지에서 예전의 단순 광고지로 전락하였다. 이 광고지는 1945년 3월까지 제공되었지만 전쟁으로 파탄난 경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MM의 제 1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는 미국 30 보병 사단이 푀스넥으로 진군하고 Vogel 출판사를 징발하면서 문을 닫게 된다. ㅠㅠ

전후 재건에 총력을 쏟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나치 정권의 종말이 MM에게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더 구스타프 포겔은 전후에 잡지사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였지만, 푀스넥을 지배 하고 있는 소련의 지휘관들이 시설 해체를 명령하였다. 여기에 아더 구스타브 포겔은 소련에 구금되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감행하여 미국령에 포한된 코부르크로 피신하게 된다. 그사이 그의 형제인 루드비히는 소비에트 점령 지역에서 출판사 몰수에 저항하면서 ‘마쉬넨마르크트 오스트’를 일시적으로 발행하였지만 그마저도 1948년에 계획 경제가 도입되면서 Vpgel 출판사는 ‘사회주의 국가 재산’으로 다시 넘어가면서 끝났다.

1952년 독일 코부르크의 전후 Vogel 사무실은 어떻게 상황을 극복해나가야 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새 시대를 낙관하면서 34 m²에서 작은 창고에서 다시 시작하다

아더 구스타프 포겔은 미군 점령 지역에서 MM을 다시 출판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군이 1947년부터 기사가 없는 광고지 발행을 허가한 이후, Vogel 출판사는 정보 통제국(Information Control Divition, ICD)에서 그 당시 굉장히 중요했던 종이 구입권을 얻었다. 전쟁 이후 MM은 34m2의 조그만 판자집에서 아더 구스타프 포겔, 형제인 루드비히, 아들 칼 테오도르, 다섯 명의 영업 사원, 한 명의 타이피스트과 배달원 그리고 두 명의 견습생이 모여 출판을 시작하였다. 첫 호는 1948년 2월 12일에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종이에 16 페이지로 20,000부가 발행되었다. 이후 MM은 1954년에 처음으로 절삭 가공 등 주제를 다룬 잡지를 출판하였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로 독자들에게 이용 가치를 높이는 데에 더욱 집중하였고, 이를 통해 잡지의 브랜드도 계속해서 올라갔다.

독자 중심으로 전환

1972년 MM에는 모듈로 구성된 총 32개의 칼럼이 있었다. 이 칼럼은 독자들이 방향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번 MM의 재편에서도 중심에 둔 목적이기도 하였다(MM은 주기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1985년과 1986년에 재편에서 시도했던 큰 변혁도 이에 해당한다. 독자 설문 조사와 연구 결과는 전문가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고, 그들은 기술, 기술의 발전 그리고 기술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을 필요로 하였다. 이 컨셉트를 구현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하였고 MM은 오늘날의 명칭인 ‘MM MaschinenMarkt가 되었다.

변화기의 매체: 디지털화 시대

당시 발행인이었던 루드비히 포겔은 1970년에 Dr. 쿠르트 에커른캄프를 회사의 임원으로 영입하였다. 현재 Vogel Communications Group의 감사 위원장인 에커른캄프는 수많은 업적 외에 Vogel 출판사와 MM MaschinenMarkt의 성공적인 디지털 변화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에커른캄프는 일찍이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를 감지하였고, 1978년에 독일 최초의 컴퓨터 잡지인 Chip을 출간하였다. 그는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언론 매체에 대해 인터넷이 갖는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1994년 전략 기획에서 디지털 매체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1996년은 MM이 상당부분 발전을 거둔 해이다, 바로 이때 인쇄판과 일치하는 디지털 버전이 생겼다. 하지만 컨텐츠 공급은 오늘날과는 달랐다. 에디터가 바로 기사를 온라인으로 출판하지 않고, Vogel 출판사 서비스 공급자를 통해 출판하였다. 서비스 공급자가 종이판 기사를 HTML 파일로 변환한 후 이를 웹사이트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 다음 가장 큰 발전은 2000년에 이루어졌다. 웹사이트가 훨씬 역동성을 띄게 되었고 뉴스레터 발송과 같은 오늘날 일반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1978년에 Vogel은 IBM의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도입하였다.

온라인 입지가 급속도로 성장하다

Vogel과 MM의 입장에서 새로운 디지털 시대로 가는 길은 2005년에 Vogel Future Group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디지털’을 인쇄본의 부록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특별히 디지털 출판을 위해 작성하는 기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기술에도 해당되었다. 이런 배경 아래 Vogel-Kosmos에서 비즈니스 효율성 포털(BEP)로 부르는 웹사이트가 관련 컨텐츠를 재생하는 검색 엔진을 가동한다. 또한 리드 생성이 한 예로 디지털 마케팅 경로도 발견하였다. 이 형태의 첫 번째 MM-BEP가 2006년 10월 16일에 온라인으로 나왔고 2008년 4월 16일에 개정판으로 대체되었다. 그때부터 MM 온라인 입지는 끊임없이 변화하였고 기술 여건에 적응해왔다. 2016에는 태블릿과 스마트폰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반응형 디자인을 도입하였다.    

MM이 2000년대에 만들어낸 또 다른 성공적인 사례는 바로 박람회 일일 신문이다. MM은 2004년에 처음으로 하노버 박람회의 공식적인 하노버 박람회 신문을 출간하였다. 누구든 박람회 현장에서 한번쯤을 접했을 것이다. 현재는 Metav, Motek, Euroblech, Blechexpo 등의 박람회 일일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2002년 Vogel IT 서버 모습.

멈추면 도태 되기에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다

2014년 MM은 12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독자와 독자들의 요건에 집중하였다. MM은 세련된 형태로 가공된 컨텐츠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레이아웃을 갖게 되었다. 점점 더 빡빡해지는 독자들의 스케줄에 대한 응답으로, 단시간에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텍스트 요소가 만들어졌으며, 매체간 네트워킹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MM이 항상 중심에 둔, 독자 중심의, 미래 지향적인 전통을 이번에 다시 재편(MM KOREA는 4월호부터 적용)에 임한다. 125주년을 맞이하여 통적인 색깔과 신선한 디자인 그리고 내용과 구성 면에서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사들을 싣고 출판하게 된다. 특히 관건은 스케줄이 빡빡한 상황에서도 내용이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그리고 기사를 이용하여 독자들의 업무에 유용한 이용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컨텐츠를 전달할 예정이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제안이든 MM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jemes@naver.com

125년 기술 발전의 발자취

전문 매거진은 자기 스스로를 목적으로 삼지 않으며, 항상 관련 주제 영역의 기술적 발전 및 경제적 발전에 뿌리내린다. 따라서 MM의 125년 역사를 이러한 기술 및 경제 발전을 정확하게 숙고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관련 전문 에디터가 일년에 걸쳐 12개 특별 세션에서 몇몇 중요한 제조업 분야의 역사와 미래를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물질 흐름, 구동 기술, 자동화, 절삭 기술, 로봇 공학, 성형 기술이 이 시리즈의 주제에 포함된다.

국제적인 MM

MM의 국제화는 칼 구스타프 포겔이 스위스에서 ‘스위스 MM’이라고 불리는 잡지를 출판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MM은 10여 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다. 이 중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폴란드, 터키, 체코, 태국, 중국, 인도 그리고 대한민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