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해 보였던 3D 프린팅의 어제와 오늘

불가능해 보이는 형상이 만들어진다. 3D 프린팅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면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MM은 이러한 3D 프린팅의 시점에서 시작하여, 영국, 벨기에, 프랑스에서 나온 초창기 아이디어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시모네 캐퍼(Simone Käfer)

핵심 내용

  • 척 헐이 3D 프린팅의 아버지라고 알고 있지만 히데오 코다마도 있다. 또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나왔다.
  • 1980년대 말 3D 프린팅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기술과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였고 최초의 사용자들이 나타났다.
  • 사용자 그룹이 확장되었다. 합리적인 응용에 대한 탐색도 시작되었다.

3년 전인 2017년 초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참으로 훌륭한 마술 같습니다!” 한 영국인 저널리스트가 작업 중인 SLS 시스템을 보면서 탄성을 자아냈다. 3D 프린팅이 최초의 특허를 받은 지 30여 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영국인 저널리스트를 놀라게 만든 푸른색 불꽃의 레이저로 플라스틱 입자를 조사하지 않았었다.

1980년, 일본인 히데오 코다마는 자외선으로 수지를 경화시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D 프린팅의 아버지는 척 헐(Chuck Hull)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척 헐은 1981년에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1982년에 같은 방법을 개발하여 1983년에 부품을 프린팅 하였다. 1984년에는 ‘Stereolithography Apparatus(입체 인쇄술 장치)’를 특허 출원하였고, 1986년에 특허가 허여되었다. 하지만 그 중요한 특허 출원을 히데오 코다마는 놓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적층 가공을 최초로 생각해낸 사람들이었을까? 여기에 물음표를 달 수 있다. 그럼 이 아이디어는 영국에서 오지 않았을까? 공상과학 소설가인 아서 C. 클라크는 1964년 BBC 방송에서 자신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였다. “저는 모든 발명을 끝낼 발명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을 리플리케이터(Replicator)라고 소개하였다. “이는 모든 사물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복사 기계입니다.”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진 조각 기술을 위한 프랑수아 윌렘의 US 특허 출원 도면. 이 프랑스 예술가가 1864년에 3D 프린팅을 발명한 것인가?

하지만 10년이 지나지 않아 이 아이디어는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실현되었다. 1972년 ‘땡땡의 모험’이란 애니메이션이 출판되었다. 뚜르누솔 교수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사물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3차원 복사기를 그렸다. 그렇다면 클라크와 벨기에의 만화가인 에르제나 그의 친구이자 앞서 말한 땡땡의 작가인 그렉이 3D 프린팅의 선구자일가? 많은 3차원 프린팅 행사에서 방문객들은 3차원으로 출력된 인체 조작상을 보았을 것이다. 여러 곳에서 사진을 찍고, 그 데이터를 전송하여 장치로 3차원 물체를 가공하였다. 이와 같이 사진 조각을 제작하는 기계 특허를 1864년에 프랑스인인 프랑수아 윌렘(François Willème)이 출원하였다. 하지만 이 기술도 적층이 아니라 조각상을 만들어 내는 절삭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장난감을 만들다 우연히 3D 프린팅의 아이디어를 얻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적층 가공으로 돌아가 보자. 1980년 말 3D 프린팅이 처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1988년에는 그보다 2년 앞서 척 홀이 설립한 회사 3D Systems가 자사의 첫 번째 기계인 SLA-1을 판매하였고, 개구리 때문에 새로운 3D 프린팅 기술이 생겼다. S.스콧 크럼프는 딸을 위해 폴리에틸렌과 캔들 왁스를 글루건으로 한 겹씩 쌓아서 장난감 개구리를 만들었다. 그의 아내 리사는 1989년 Stratasys를 설립하였고, 이 글루건 방식의 아이디어를 자동화하여 FDM (Fused Deposition Modelling)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992년에 첫 번째 기계가 판매되었다. 이 적층 가공법을 FFF (Fused Filament Fabrication), FLM (Fused Layer Modeling), 재료 압출 등 많은 명칭들이 생겼다.   

레이저 빔을 이용한 프린팅의 토대는 학문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였다. 카를 데카르트는 석사 때부터 선택적 레이저 소결을 연구하였다. 그는 1986년에 특허를 출원했고, 1989년에 특허가 허여되었다. 그보다 2년 전인 1987년에 카를 데카르트는 쾌속 조형(Rapid Prototyping)을 전문으로 하는 DTM 사를 설립하였다. 이 DTM을 3D Systems가 2001년에 인수하였다. 카를 데카르트는 선택적 레이저 소결을 계속 연구하였고, 2012년에 SLS 기계를 위한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Structured Polymer의 공동 설립자가 되었다. 바인더 제팅의 시작도 1990년대 초반이다. Z Corp는 석고 분말과 물 베이스 결합제로 작동하는 프린터 Z402를 개발하였다.

EOS의 첫 번째 기계인 Stereos 400은 자동차 회사인 BMW가 투자하여 완성했다.

또 다른 적층 가공 플레이어가 1989년 등장하였다. Dr.한스 J.랑어는 당시 그의 고용주와는 달리 CAD를 이용하여 물리적 부품을 디지털화하고, 적층 가공으로 도구 없이 제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에 따라 EOS는 독일의 첫 번째 3D 프린팅 업체로 출발하였으며, 시제품 제작의 비전을 가진 업체가 되었다. 한스 랑어의 첫 번째 고객은 자동차 회사인 바로 BMW였다. 1990년 BMW는 레이저 기반 광조형 기계에 대한 한즈 랑어의 아이디어에 투자하였고, 그로부터 1년 만에 Stereos 400을 납품받았다.

3D 프린팅의 첫 번째 사용자와 데이터 호환 문제

첫 번째 사용자도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제대로 된 적층 가공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쾌속 조형이 일반화되었고 3D 프린팅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EOS의 IP & 기술 서비스 디렉터인 Dr. 미하엘 쉘라비어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였다. “Dr.한스 J. 랑거와의 만남으로 우연히 3D 프린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3D 프린팅의 잠재력을 알게 되었고 영국에서 독일로 이사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이 새로운 기술을 1988년 산업 레이저 리뷰(Industrial Laser Review)라는 잡지의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에 쾌속 조형이라 불렸던 이 새로운 기술이 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Dr. 디터 슈바르체, SLM Solutions 학문 및 기술 연구 매니저) Dr.디터 슈바르체와 Dr. 마티아스 포켈레는 3D CAD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구 없이 복잡한 부품을 적층 가공으로 제조하는 아이디어에 감탄하였고, 급기야 F&S Stereolithographietechnik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프랑크 섀플라인도 1세대 적층 가공업자이다. 현재 Staratasys의 EMEA 시니어 어플리케이션 엔지니어로 재직 중인 프랑크 섀플라인은 1988년에 Spectra Physics에서 실질적인 3D 프린팅 접근법을 발견하였다.

프리드 반크란은 1990년에 3D 프린터를 처음으로 구매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Materialise를 설립하였다

1989년에 슈테판 케겔만은 Kegelmann Technik GmbH.를 설립하였고, 3D Systems의 5호 장비를 구입하였다. 슈테판 케겔만은 이 기계를 통해 SLA 법에 충실하였고 이 기술을 다른 적층 가공법으로 보완하였다. 이후 1년 만에 BMW가 적층 가공을 시작하였고, 1992년에 VW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업체들은 프리드 반크란과 같은 문제에 봉착하였다. 벨기에인 프리드 반크란은 1990년에 SLA 프린터를 구매하였고, 질적으로 우수한 부품을 제작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최초 부품을 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당시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가장 실용적인 매체는 디스켓이었다. 컴퓨터의 데이터를 3D 프린터에 어떻게 받고, 3D 프린터는 컴퓨터의 데이터를 어떻게 제대로 판독할 수 있었을까? 이 새로운 도전에, 요한 포웰과 함께 프리드 반크란은 디지털 3D 데이터를 SLA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포맷으로 전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고, 서포트 생성 기능도 통합하였다. 바로 Materialise의 Magics가 적층 가공을 위한 첫 번째 소프트웨어이다.

이런 케이지 볼을 3D 프린팅 하는 데 12시간이 걸린다.

그 당시 3D 프린터에서는 어떤 제품이 나왔을까? STL 파일의 품질을 점검하기 위한 모서리가 깎인 속이 빈 직육면체가 프랑크 섀플라인이 만든 것이 바로 첫 번째 작품이다. 오늘날 적층 가공에서 추구하는 디자인 자유도를 생각하면 매우 단순한 작품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케이지 볼이라고 하는 1″ × 1″ × 2″ 치수의 구체가 프린트되었다. “당시에는 비교적 작은 부품을 제조하는 데에도 12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속이 텅 빈 구체는 당시에 불가능했던 환상적인 제품이었습니다.” 디터 슈바르체의 자전거 제조사를 위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우징인 자신의 첫 번째 부품으로 최종 응용 사례에 한층 가까워졌다. 이 하우징은 자전거 안장에 고정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기술이나 재료 모두 완전히 성숙되지 못해, 두 층이 달라붙지 않거나 와이퍼가 부품을 변형시키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프랑크 섀플라인은 회상했다. 그는 경화를 위해 창문 틀에 놓는 일련의 조형 플랫폼을 구상했다. 디터 슈바르체는 기대하지 않았던 영역에서 적층 가공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가금류 사료 공급 장치로 증명하였다.

첫 번째 금속 3D 프린팅과 모래를 이용한 3D 프린팅

스웨덴 업체인 Arcam은 1997년에 처음 설립되었으나, 설립자 랄프 라르손은 1993년에 전자빔 용융(EBM)에 대한 특허를 이미 출원하였다. 랄프 라르손은 예테보리 샬머스 공과 대학과 협력하여 전자빔이 금속 분말을 부분적으로 용융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EOS는 첫 번째 3D 금속 프린터를 완성하였다. Arcam의 EBM과의 차이점은 에너지원에 있다. EOS는 금속에도 레이저를 사용하였고, EOS는 1996년에 금속 프린터를 양산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Arcam은 특허 출원 후 거의 10년 지난 후인 2002년에 이르러 자사의 첫 번째 EBM 기계를 Euromold에서 첫 선을 보였다.

주물 공장의 경우 모래를 이용한 3D 프린팅에 관심이 많다. 모래를 이용한 3D 프린팅으로 몰드를 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업계에 Voxeljet가 진입하였다. 이 업체가 설립된 것은 1999년이지만, Voxeljet 기계로 제작하는 최종 제품이 가장 유명하다. 스타워즈 헬멧이나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형태 전체를 3D 프린팅할 필요로 하는 경우 흥미롭습니다. 영화 등 예술 파트너들과 일할 때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 분야에서 요구하는 형상은 항상 까다롭지만 이들과의 토론은 항상 신선합니다!”(Dr.잉고 에더러, Voxeljet 기술 개발자 및 공동 설립자) 이에 더해 프린트되는 부품의 치수도 대부분 거대하다. 6m x 8m x 8m에 이르는 커다란 조각상도 있었다. Voxeljet도 산업 분야에 진입하였다. 얼마 전에 소개된 프로젝트 ICP로 모래 몰드 생산 라인을 제작하였다.

Stratasys의 섀플라인은 경화를 위해 일련의 조형 플랫폼을 구상하였다.

프랑크 섀플라인은 1996년에 Stratasys로 옮겨서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제가 이곳에서 자부심을 갖고 ABS로 제작한 첫 번째 조형물이 삼각형이었습니다. 그 조형물은 조형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제거할 수 있는 전용 지지 구조물을 이용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응용 분야 개발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새로운 소재가 나오고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확장되고 있다. 그사이 3D 프린팅은 산업적으로 사용 가능한 제조법에 얼마나 접근했을까? 기계 운전자가 버튼을 누르고 조형물이 뚝딱 생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수준으로 마술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절삭법 및 성형법에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구축되고 다듬어진 수많은 노하우가 담겨 있다. 적층 가공은 그런 방향으로 더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터 슈바르체는 3D 프린팅이 산업 분야에 이미 자리 잡았다고 강조하였다. “수많은 산업 분야의 다양한 응용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디터 슈바르체) 하지만 미하엘 쉘라비어는 이와 반대 의견을 피력하였다. “저는 아직까지 3D 프린팅이 산업의 ‘초입 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수많은 상업용 항공기가 적층 가공한 엔진 부품을 장착하고 비행합니다. 이 분야에서는 3D 프린팅 기술이 결정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3D 프린팅을 적용할 수 있는 잠재적인 산업적 응용 사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3D 프린팅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디터 슈바르체는 쾌속 조형이 생산 기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사용자 그룹이 현재 상황을 암시한다. 미하엘 쉘라비어는 고객 층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3D 프린팅이 아직 프로토타입 제작에만 머물러 있을 때에 EOS는 개발 부서나 규모가 작은 업체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는 생산 부서나 관리 부서와 직접 상의합니다. 대화 주제도 완전히 바뀌어, 품질, 신뢰성, 부품 당 비용 등입니다.”(미하엘 쉘라비어) 디터 슈바르체는 자사 고객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작 과정에서 SLM Solutions와 협력한다. 프랑크 새플라인도 3D 프린팅을 이성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3D 프린팅에 대한 큰 기대감으로 인해 적층 가공의 합리적인 사용 방법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술에 집중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기술의 합리적 응용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프랑크 섀플라인) 잉고 에더러도 비슷한 생각이다. “3D 프린팅의 합리적인 응용 사례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먼저 3D 프린팅에 맞게 사고하고, 제품의 핵심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달성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특수한 물결 구조가 소리를 흡수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기능을 적용할 수 있다.

적합한 응용 사례를 찾는 것이 현재 적층 가공에 제시된 유일한 주제는 아니다. 3D 프린팅이 프로토타입 제작 단계를 넘어 성장을 거듭하면서, 기계 제조사에 제시하는 과제도 더욱 까다로워졌다. 아직은 많은 3D 프린터가 고객들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자동화할 수 있는 방법도 미비하여 생산에 통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여 이를 극복해야 한다. 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