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삭 공구의 혁명은 사소한 문제 해결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말, 금속 재료를 절삭하는 기술은 다소 우연에서 나온 결과이다. 예전에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에서 하나하나 만들었다면, 현재는 연구실에서 개발자들이 이를 개발하고 있다.

 

틸로 미할(Tilo Michal): 에디터, Strichpunkte.K 에이전시의 워크숍 트레이너

 

Garant 브랜드로 잘 알려진 Hoffmann은 30년 전에 뮌헨에서 큰 규모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공구 제조사 Horn의 역사는 공구함과 함께 시작되었다. 1920년에 출생한 파울 호른은 1969년에 초경 공구 제조사를 등록하고, 공구 샘플이 가득 찬 공구함을 들고 영업을 시작하였다.

1950년대에 이룬 경제 기적은 효과적인 공구와 특수 솔루션의 붐을 일으켰다. 초경 금속 공구 회사인 Hertel (오늘날의 Kennametal) 대표 호른이 사업을 시작한 당시만 해도 Hertel이 세계적인 절삭 공구 제조사로 발돋움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의 아들 로타르 호른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당시에 아버지는 Hertel과 같이 규모가 있는 생산 업체가 생산 개수가 적은 전문화된 공구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이러한 틈새 시장을 메우기 위해 멀티 그루빙을 위한 그루빙 공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내연 기관 피스톤 공급업체인 Stuttgarter Mahle GmbH의 큰 수요가 있었습니다.“ Mahle는 파울 호른의 첫 번째 큰 고객이 되었다. Horn은 Mahle를 위해 그루빙 커터를 제작하였고, 제작 과정에서 제조 공차 3μm를 달성하였다. 이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에서 달성한 수치이며, 생산량이 미미하여 시간당 네 개 이상의 그루빙 커터를 제작하지 못했다.

 

지진 감지 능력을 지닌 동물적인 감각으로 성공을 거두다

과거 기록물을 보거나 엔니지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슝크(오늘날 Schunk 클램핑 및 그리핑 시스템)는 1945년에 작은 창고에 기계 작업장을 차렸다. 당시 슝크는 작업 중에 발생하는 문제 해결이 전문 분야였다. 그 시대의 설립자들은 시장의 틈새를 메울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템과 발명품을 찾는데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혁신의 동력은 야금이고 선택한 재료는 초경 금속이었다. „이러한 발견은 절삭 공구 분야에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초경 금속의 분말 야금 제조로 인해 다양한 프로세스에 맞추어 제작이 가능했고, 코팅과 조합하여 초경 금속을 바탕으로 응용 사례에 적합한 공구를 실현하였습니다.“ 도르트문트 절삭 제조 연구소(ISF) 소장인 디르크 비어만 교수는 설명하였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인터뷰도 참조).

긴 제조 시간을 보면 현재 상황에 도달하기까지 수천 번의 반복 작업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증기 기관으로 유명한 제임스 와트는 실린더에 구멍을 뚫는 데는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오늘날 이러한 실린더는 다이아몬드 코팅된 공구로 단 몇 초 만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다. 제조사의 제조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갖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기계와 공구, 새로운 강재가 필요했다.

 

HSS가 절삭 속도에 혁명을 일으키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면서 표면 경화된 강 재질의 공구가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공구도 1분 당 몇 미터만 절삭해도 내온성이 떨어져 강도가 사라졌다. 1868년경, 첫 번째 구제 조치로 무셰트 스틸이라고 불리는 텅스텐을 첨가하여 로버트 포레스터 무셰트의 합금 공구가 탄생하였다. 이로 인해 약 10m/min의 절삭이 가능해졌다. 1차 세계 대전 직전에는 더욱 빠른 절삭이 가능하였다.

1900년 세계 박람회에서 프레데릭 윈슬로프 테일러는 마운셀 화이트와 함께 개발한 HSS(고속도강)을 시연하였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최대 40m/min의 절삭으로 공구가 벌겋게 달아 올랐지만, 파란 칩이 상당량 쌓이는 가운데에도 큰 이상이 없었다. 이후 퀀텀 도약이 이루어졌다. 1926년에 Krupp이 Krupp-Widia 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소결로에서 초경 금속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구성 면에서도 오늘날의 초경 금속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첫 번째 제품 Widia-N(WC-6Co)은 1927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 처음 소개되었다.

1920년 대: Walter의 세계 최초 초경 컷터는 Dynit 재질의 커팅 에지와 함께 작동한다. 탄화텅스텐과 코발트 재질의 납땜한 커팅 에지 합금은 단조 및 롤링이 불가능하지만 최대 1,000°C까지 형태와 강도를 유지한다.

이 시기에 리하르트 발터는 1차 세계 대전 직후 뒤셀도르프에 야금 회사 Richard Walter und Co.를 설립하였다. 발터도 당시에는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발터의 목적은 새로운 설계와 합금을 통해 절삭 공구의 효율과 내마모성 및 내열성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1920년대 리하르트 발터는 200여 개의 특허를 출원하였고, 그 가운데 하나인 탄화텅스텐 초경 야금, Dynit는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탄화텅스텐과 코발트 재질의 커팅 에지 합금은 단조나 롤링이 불가능하지만, 그 형태와 강도는 최대 1000°C까지 유지되었다. 그로 인해 초경 커팅 에지는 통상적인 고속도강을 정밀성이나 마모 면에서 능가한다. 제조사의 설명에 따르면 고속도강보다 최대 500% 정도 뛰어나 절삭 금속 가공에 혁명을 일으켰다.

1950년대에는 경제 기적과 세계적인 번영으로 인해 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지금까지의 보수적인 절삭 방법, 즉 보디 캐스트 이후 밀링, 터닝, 드릴링, 평삭 그리고 최종적으로 연삭을 통한 가공은 대량 생산과 다양화된 형태의 가공법 등의 요구 사항을 더 이상 충족하지 못했다.  

 

최신식(전자식) 생산으로 진입

Sandvik은 노란 유니폼을 입은 서비스팀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기계 공학의 급속한 발전에는 효과적인 공구 제조의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50년대 말부터 NC(numerical control, 수치 제어)라는 키워드가 퍼졌고, 1970년대 초기에는 인덱서블 인서트가 정밀 가공 프로세스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되었다. 이것은 가공 프로세스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인서트가 상용되기 이전에는 정밀 가공을 위해 초경 절삭날을 브레이징한 공구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공구는 절삭날이 마모되면 절삭날을 재연마하기 위해 제조사나 연마 업체로 제품을 보내야 했다. 따라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고, 재연마 과정에서 공구에 경미한 치수 변화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인덱서블 인서트는 공구 샹크와 절삭날을 분리할 수 있어, 절삭날(최대 3개)이 마모되면 절삭날을 고정하고 있는 플레이트를 돌려 다른 면의 절삭날로 가공을 계속하여 최종 가공 치수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무렵에 최초의 다단 절삭공구 개발이 이루어졌고, 독일 MAPAL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는 점점 복잡한 가공 프로세스를 위한 공구 설계를 의미한다. 다단 절삭공구를 개발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실린더 헤드의 가공프로세스 해결책에 있었다. 초기 MAPAL의 혁신적 공구는 다수의 드릴링과 카운터 싱킹 단계를 하나로 동시에 가공 가능한 복합 드릴이었다. 이 공구는 한 번의 가공 공정으로 보링, 평면, 카운터 싱크 뿐만 아니라, 각 면의 전환부를 동시에 가공하여 공구 교체 없이 장비의 비생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1980년 대로 접어들면서 NC 제조에서 CNC 제조(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로 넘어가고, 생산 과정에서 작업 준비, 작업 계획, 정확도, 재현성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이 시기에 개발자들의 아이디어가 활기를 띠었고, 기계 공학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가이드패드를 장착한 공구가 출시되었다. 가이드패드와 인덱서블 인서트의 높은 품질로 내부홀 가공에서 가공 정확도와 가공 성능이 모두 향상되었다. MAPAL은 이 분야에서 기술 선두자 역할을 하며, 스프링 장착 가이드 패드를 공급하였다.

1980년대 말에 들어, 시장에 새로운 단어 ‘소형화’가 부상하였고, EMO 1989 박람회에서 „ Supermini® 시스템이 소개되었다. 이 시스템은 직경 최대 5mm의 내부홀 가공을 위한 소형 그루빙 공구이다. „Supermini®“는 일체형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극도로 작은 내부홀 가공이 가능하다.

 

과학의 새로운 자극으로 학문적 노하우를 갖추다.

1990년에 HSK 인터페이스가 출시되었다.

1990년대, 공작기계의 공구 홀더에 HSK 타입과 HSK 인터페이스라고 불리는 생크 테이퍼 메커니즘이 도입되어 표준이 되었고, 기존의 SK 타입을 대체할 수 있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로 전환되는 시기에 MAPAL은 여러 대학교와 연구 기관과 함께 활발한 연구개발을 이어갔다. 대학교와 연구 기관들은 자체 장비, 테스트 홀, 인력 및 산업 파트너십을 구성하며, 장비-공구-공작물 공급 체인의 각 세그먼트를 REM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고속 절삭, 절삭날 라운딩, 칩 형태, 레이저 처리한 칩 브레이커, 가장자리 가공영역 특성, 가공 프로세스 시뮬레이션, 코팅 등의 주제에 관한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들이 줄을 이었고, 연구결과와 데이터는 학술 잡지에 게재되었으며, 관련 업계에도 제공되었다. 긴밀한 산학 협력과 전문화된 대학의 지속적인 양성은 오늘날 독일의 입지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학문적 노하우와 고강도 절삭 소재, 하이테크 코팅을 갖춘 공구들은 21세기 초부터 대량 생산을 넘어 양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하이엔드 공구의 예시는 고광택 표면 처리와 360° 회전하며 가공할 수 있는 다결정 다이다몬드로 처리된 터닝 공구들이다.

3D 프린팅 기술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3D 프린팅은 공구 안쪽에 중공이 형성되어, 크기가 다소 큰 공구라도 무게를 줄여 머시닝 센터에서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개발자들은 자원 절약과 에너지 효율성에 대한 최신 연구를 배경으로 또 다시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티타늄 합금, 고강도 강, 니켈 베이스 합금, 폴리머 및 마그네슘 합금과 같은 난삭재가 항공기와 자동차 제조뿐만 아니라 의료 기술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3D 프린팅기술이 적용되어 또 다른 절삭 가공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MAPAL은 적층 영역에서도 적극적인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2014년 MAPAL은 3D프리팅 적층 가공법을 적용하여 직경 범위 8 ~ 13mm의 인덱서블 드릴 공구인 ‘QTD’ 공구를 제작하는데 성공하였고 양산에 들어갔다. “인더스트리 4.0“ 시대에는 공구 분야에도 많은 잠재 요소가 존재한다. 이전의 Paul Horn사가 그랬던 것처럼 혁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수많은 디지털데이터를 활용하여 인더스트리 4.0에 시대에 적합한 다양한 절삭 가공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

 

MM 머신 엔지니어링

 

회색 공구함에서 디자이너 툴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에 들어와 기계 공학이 매우 큰 폭으로 발전하였다. 70년대에 생산 체인의 또 다른 영역인 연마 기계가 출시되었다. 80년대부터 CNC 제어 공작 기계는 개별적인 절삭 작업에 맞추어 조정하고 소량 시리즈도 제조할 수 있었으며, CNC 기술을 통해 CAD 도면을 읽고 기계에 바로 적용하여 셋업 시간과 비생산 시간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고정 축으로 선회 축을 설계하고, 터닝, 밀링 그리고 연삭 원리는 축이 5개인 머시닝 센터가 발전하면서 영역이 점점 흐려졌다. 또한 공작 기계는 가공 요건에 따라 윤활 가공과 건식 가공 방식이 설계되었다. 최신 세대는 초기의 ‚회색 공구함‘에 머물지 않고 Red Dot 디자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제 공작 기계는 매력적인 여러 패키지를 통해 소비재와 같은 느낌을 준다.